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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다녀오는 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생각보다는 덜 힘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는 외국 여행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기는 어려울 듯 싶다.
이번 여행에서 박군이 좋았던 건, 아마 인천공항 taxing way에서 정비사들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어주던 것과, 백화점 장난감 코너의 기차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 좋은 기억들만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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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특히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좀 세거나 적어도 비슷한 나라를 다녀오는 여행의 후유증은, 한국 물가가 싸게 느껴진다는 거다. 그리고, 여행시에는 여행을 즐기는 게 돈 아끼는 것보다 우선이다보니, 돈쓰는 것에 더 관대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귀국해서도 잠시동안은 소비에 관대해진다.
생각해보면, 이 땅의 여행도 그렇게 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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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친절했다.
점원들이야 물건을 팔아야 하니 당연히 친절하지만, 박군의 옷이 불편해 보인다고 직접 박군 옷깃을 접어주고, 내리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내리신 할머니나, 지하철 옆자리에서 박양의 이것저것 건드려보기 공세에도 일일이 반응해주고, "안녕하세요", "맛있어요"를 직접 구사하던 아주머니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아니더라도, 외국인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같은걸 어느정도 예상했던 터라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점점 편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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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지하철은 한국 못지 않게 시끄럽고, 좁은 길에서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종종 무시되며, 다른 사람과의 우발적인 접촉에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특히 일방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멈춰선 택시에서 내리던 아줌마한테서는 한국서도 보기 힘든 포스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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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약 때문에 박군에게 제약이 제일 컸다.
결과적으로 평소보다 더 많이 혼나고, 더 많이 우울해했다.
전반적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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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는 일본의 불황이 자주 경제면에 실리지만, 적어도 오사카의 번화가에서는 그런걸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마눌 말로는 할머니들 차림이 무척 고급/고가라고 하던데, 노인층의 구매력이 전체의 60%쯤 된다는 기사의 간접적인 증거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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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여자들의 다리가 한국보다 가늘다.
치마도 더 짧고, 저렇게 입는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지는 정도로 짧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게다가 눈화장이 너무 진해서, 조명이 밝지 않으면 좀 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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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등급이 다양해서, 장거리 이동시에도 편리했다.(쾌속급행, 급행, 준급행, 보통, etc.)
급행일수록 정차역 수가 적다.
이건 서울 지하철에서도 함 고려해보는게 좋을듯 한데, 급행 때문에 보통 지하철이 기다려주거나, 역에 선로를 더 설치해야 한다는 문제가 남기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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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우리나라랑 별로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지하 식품 매장도 비슷하고, 시식도 권하고, 저녁때는 떨이도 하고...
게다가 구매금액에 따라 사은품도 주는데, 우리는 백화점 카드가 없어서 못받았다...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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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성이 훌륭한 마님을 둔 덕에, 박군이랑 다니는 거 말고는 별로 한게 없다.
끼니수에 맞춰 박양 밥을 준비해서 꼬박꼬박 데워 먹이면서 여행을 다닌 건, 돌이켜 보면 좀 놀라운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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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은 [독도는 우리땅]을 열심히 불렀다.
독도가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식을 들은 어린이집 선생님(노래를 가르쳐준)께서 무척 뿌듯해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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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에 박군 변비땜에 홍역을 치렀다.
어르다 야단치다, 물 먹이고 요구르트 먹이고, 안아주고 쓸어주고 하다가 하여간 변을 보고 잠들었다.
덕분에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요구르트랑 우유를 마시게 하고, 사과 먹이고, 변을 보게 하면서 잘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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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h항공의 기내 승무원 중에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심지어 읽어주는 멘트조차 제대로 발음이 안된다.
제일 괜찮았던 발음이, 인천에 착륙하고 나온 방송의 "감사하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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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근교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전철을 타고 한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이들에게 무척 지루하고 괴로운 일이다.
다행이 박군은 아빠 폰으로 (평소에 안보여주던) 부르미즈를 보면서 잘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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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짜긴 하지만, 음식은 훌륭하다.
돈까스, 가정식, 우동, 초밥 정도를 먹어봤지만, 하나같이 맛이 좋았다.
심지어 동네 수퍼에서 파는 초밥 도시락도 훌륭했다.
그러고 보니, 라멘을 못 먹어보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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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에서 똑딱이는 필수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애 하나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아빠가 DSLR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평소 스타일과 달리, RAW+JPG로 찍었는데도 16GB 두개를 다 못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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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5의 오토+ 모드를 애용했다.
z1085에서도 오토를 주로 사용했다.
광량만 충분하다면, 순간적인 촬영에는 오토모드가 아주 만족스럽다. 특히 역광에서 아주 편리하다. z1085만 해도 역광에서 암부 보정이 꽤 훌륭하다.
이번에도 a55의 오토/셔속우선 모드와, z1085의 오토/M/P 모드를 바꿔가며 사용했다.
그리고, a55의 라이브뷰는 아빠진사에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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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 오프라인 지도를 넣어가려고 하다가 시간/자료 부족으로 못해갔다.
나침반 앱 정도만 넣어도 아주 유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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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서비스는 아주 훌륭하다.
박양의 이유식을 데워줄 때도 꼭 작은 쟁반에 고무패드를 받쳐서 돌려준다.
사소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대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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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마눌의 일본어가 훌륭하고, 내 영어가 버벅여서, 결과적으로 나는 벙어리 모드로 따라다녔다.
마눌이 그렇지 않으면, 만화 보던 실력으로라도 더듬거리면서 내가 의사소통을 했겠지만, 앞으로도 혼자 일본서 뭘 할 일이 없을테니, 일본어 공부를 할 일은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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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있기는 했다.
수퍼에서 딸기잼이 어딨는지 물어본다고, 점원한테 "스트로베리 재무가 도꼬에 이마쓰까?" 했더니, 남자직원이 잘 못알아듣는다.
내 발음이 덜 일본스러운가 싶어서, "스트로베리 재--무"라고 했더니, 2층에 있단다.
2층에 올라가서 이번엔 여자 점원한테 "스트로베리 재-무가 도꼬..."했더니 바로 날 끌고 매대 앞에 데려다준다.
마눌한테 얘기해줬더니 물건에는 "이마쓰"가 아니고 "아리마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