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낳아 키운다는 게
(2013.10.10.)
박군을 낳기 전에, 애를 낳을 것인가를 꽤 고민했었어.
그때 고민의 이유는, 이 괴로운 인생을 왜 죄없는 아이에게 짊어지워야 하느냐는 거였는데...
결국은 행복한 인생을 살 기회도 있다는 좀 비겁한 이유와, 남들 다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는, 애매한 이기심의 결정에 의해 박군이 세상에 태어났지.
박군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빠의 이기심은 그 죄값을 잘 받아서, 초반에는 잠을 설치고, 중반에는 일을 설치고, 요즘에는 박양의 가세로 정신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 고생은 아이의 미소 한방에 다 날아간다고들 하지만... 개뻥.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면 안되지.
고생은 고생이고, 웃는 얼굴 보는건 그냥 보는거지. 그걸로 어떻게 해결을 해볼라고 약을 파심?
(물론 사람의 뇌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는 게...: 행복한 기억이 오래 간다.)
(게다가 행복한 순간은 사진으로라도 남지만, 잠 못자고 비몽사몽간에 애보고, 일 못해서 동동거리던 기억은 기록으로 남지도 않잖어.(잠이 모자라서 사고를 내거나, 일을 못해서 짤;;;리거나 하는 기록 말고))
애를 낳기 전에도, 애를 낳아 키우는 건 손실이 확실히 확정된 투자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만, 문제는, 손실 규모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단 게 치명적인 문제였던 거야.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유야 생명체에 프로그래밍된 시퀀스의 결과라지만, 적어도 생각을 좀 한다는 인류가 이런 멍청한 투자를 수십만년동안 해오고 있다는 건 쫌 이상하기도 하네. (근데 옛날에는 사냥하고 농사지으려면 자식이 필요했을테니 남는 장사였을지도 모르겠음.)
(생각해보니, 최근을 제외하고, 애는 만드는 게 아니고 생기는 거였군... 유전자의 음모야, 음모.)
근데 적어도 요즘 대한민국에서 이게 남는 장사일 수 있을까?
지금이야 잠 못자고, 일 못하는 정도지만, 박양만 해도 요즘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돈이 ㅎㄷㄷ하고, 지금 아니라도 나중에 죽음의 공교육 시즌이 시작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죽음의 랠리에 쏟아부어야 하는 (회수 불가능한) 투자금은...
(게다가 이넘들이 아무리 잘돼도, 나한테 투자금을 돌려주겠어?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 3, 40대는 누가 보상해주나...)
현대 사회의 출산/양육/교육은, 사용자에게 노동자를 제공해주는 프로세스일 뿐이란 극단적인 생각도 그럴듯하다니까...
(게다가 그 프로세스에 사용자는 하나도 기여하는 거 없이, 교육까지 다 끝내둔 노동자들중에 최고로 괜찮은 넘들만 싹 뽑아가고, 나머지는 걍 도태되지.)
말이 나온김에...
열살까진 뭔지도 모르고 살았고,
십대에는 숙제하고 두들거 맞으면서 살았고,
이십대에는 역시 숙제하고 시험보면서 허덕였고,
삼십대에는 월급받고 애키우면서 허덕였고,
사십대는 삽십대+건강악화.
게다가 이제 통계적으로 인생의 절반쯤을 살았는데, 앞으로는 몸은 점점 망가질거고...
우울해...
- 십년 넘게 안생기던 혀 밑 구내염 땜에 아픈 오후